[국민연금 수급자 생활수기]
박세리가 상패에 뽀뽀하듯
어제는 날씨가 화창하여 용산 국립박물관을 구경하면서 일행들과 커피를 여러잔 마신 탓인지 영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연금통장을 보았습니다.
연금이 통장에 찍혀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치 박세리 골퍼가 큰 유리 상패에다 기쁨의 뽀뽀를 해주듯이 나도 연금통장을 입에다 갖다 대고 '쪽' 소리를 내봤습니다.
나중에 콩알만큼 탄다는 소리를 듣고
돌이켜보면 그때는 지금보다 좀 팔팔거릴 때라서 일도 열심히 하여 연금 붓는 액수가 별로 많지 않아 다달이 은행에 가서 잘 냈습니다. 그러나 연금보험을 열심히 내더라도 나중에 콩알만큼 탄다는 소리를 듣고 그냥 시큰둥하게 별거 아닌 것 같아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후 Y.M.C.A에서 산모도우미 교육을 받고 계속 쉬지 않고 일을 하다 보니 건강에 적신호가 왔습니다. 그뿐 아니라 산후조리원은 우후죽순같 이 여기저기 많이 생겨 내가 일해야 할 자리가 별로 없었습니다. 결혼한 딸이 2년 터울로 아이 셋을 낳아 기르는걸 힘들어 하니 아픈 다리 쩔뚝거 리며 딸네 집도 힘들게 오고 가야 했습니다.
쌓여가는 연금고지서... 한꺼번에 납부하니
그러는 사이에 연금고지서 쪽지가 수북이 쌓였습니다. 하루는 국민연금사무실로 찾아가 "나는 어찌했으면 좋겠소?" 라 물었습니다. 중도에 포기하는 것은 너무 아까우니 밀린 보험료를 한꺼번에 마련하여 계속 유지해 보라는 권유였습니다. 나는 그 직원이 하라는 대로 몇 십만 원의 밀린 보험료를 납부하고 자동이체도 했습니다. 그날은 그렇게 홀가분하고 잠도 잘 왔습니다. 그 직원 말이 귓전을 두드립니다. "배우자 없는 분에게는 그래도 지금은 다달이 힘들겠지만 나중엔 소중히 쓰일 것입니다." "오래 건강하게 살면 득이 됩니다."
연금으로 선물해준 외손녀 돌반지
참 그렇다! 지금 나의 국민연금 통장엔 매달 연금이 들어옵니다. 이 돈으로 APT관리비, 전화요금, 가스비, 전기료까지 충당합니다. 어느 달엔 좀 모자랄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아주 쬐끔 남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니, 내 통장에 ‘쪼옥’ 뽀뽀 안 해줄 수 있겠습니다.
올 여름 셋째 외손녀 돌반지도 연금통장에서 찾아서 샀습니다. 그러니까 외할미 노릇을 톡톡히 한 셈입니다.
"그렇다면 대포 한 잔 사슈"
가을이 저물어갈 무렵, 나는 Boy Friend 할아버지하고 등산을 갔습니다.
단풍잎은 붉게 물들어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는 졸졸 거리며 바위틈으로 흘러내립니다. 등산객들은 저마다 울긋불긋한 등산옷들을 입고 잘도 올라갔습니다. 나도 바 위틈에서 털실줄기 같은 가느다란 물을 바가지로 받아마셨습니다. ‘와 시원타!’
"저기요. 나 할 이야기가 있어요." "예, 뭔데 해보시오." 할아버지는 굵직한 바리톤 음성으로 나의 다음 이야기를 재촉합니다. "저 물 줄기만큼 나 국민연금 타잖아요. 그래도 많이 보탬이 되거든요."라고 말했습니다. "어허, 그것 참 아주 훌륭하군." 것 참 훌륭하다는 말을 나는 다시 되새김질해 봤습니다. 좋다는 뜻도 있겠지만 안심이 된다는 말도 포함된 듯 했습니다.
물론 할아버지가 털실 줄기만큼 받는 나의 국민연금을 눈독 들이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다면 대포 한 잔 사슈.”하는 말이 더 걸작입니다. 그 날 난 아주 기분 좋게 등산을 하고 집에 왔습니다.
아플 때 약도 사먹고, 손주들 사탕도...
예, 그렇습니다. 나에게는 정말로 국민연금은 효자입니다. 몇 년이 지나도록 이 늙어가는 애미에게 소식 전하지 않는 내 아들보다 효자가 아니겠어요. 나는 아주 요긴하게 매 달 어느 보물보다 소중하게 여기면서 아껴가며 씁니다.
나라에서는 이 제도를 아주 잘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나름대로 각자가 때론 아플 때 약도 사먹을 수 있고, 손주들 사탕도 사줄 수 도 있고, 분위기 있는 카페에 가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향기로운 커피도 한 잔 할 수도 있으니 그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나는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것은 국민연금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국민연금에 감사드리며 오늘도 반질반질한 내 통장을 또 한 번 만져봅니다.
국민연금을 말한다_국민연금 2009년 여름호
이영록_경기도 부천시 원미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