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조명] - 국민연금 기금 운용 어떻게 하나
"가입자 이익이 기금관리 최우선 원칙"
내일신문, 2004. 11. 23
국민연금을 ‘한국판 뉴딜’ 등에 사용하겠다는 경제부처의 방침으로 촉발된 기금운용 투자처 논란이 기금운용위원회 독립성 문제로 비화하고 있다. 국민연금 관리와 집행을 맡아온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관리공단은 그동안 기금운용 실적 평가가 좋은 결과를 보이고 있음을 강조하고 갑작스런 기금운용체계 논의에 의아해하고 있다. 정부는 21일 당·정·청 회의에서 기금운영위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담보하기 위해 기금운영위의 공사화를 추진하다는 방침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현 기금 운용 현황과 원칙 등을 살펴보고 외국 사례를 비교해본다. /편집자주
■ 현 기금 운용 현황
평균 8.32% 수익률 … 세계은행도 우수 평가
지난 1988년 국민연금 기금이 출범한 이래 올 10월말 현재까지 기금 전체적으로 순손실을 기록하지 않았다.
국민연금관리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저금리 상황에서도 8조274억원(연 7.83%)의 수익을 올렸다. 출범 당시 수익률은 11.98%였고, 1995년까지 12%의 고수익률을 유지했다. IMF 체제 이후 한때 4.69%까지 떨어졌다가 최근 7∼8%를 유지하고 있어 지금까지 평균수익률이 8.32%를 기록하고 있다. 1988년부터 올 8월까지 105조1000억원이 연금보험료로 걷혔으며 운용수익으로 41조9000억원을 벌어들였다.
올 10월말 현재 운용기금은 모두 129조8000억원이 넘는다. 이 가운데 110조가 국내 채권과 해외채권 매입 등에 사용됐다. 대부분 3년 만기 채권이다. 기금의 기본적인 수익률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채권과 같은 안정적인 투자처에 기금의 상당한 부분을 배분한다는 게 기금운용의 방식이다.
국내 주식시장에 들어간 기금은 모두 9조4000억원 정도. 직접투자와 간접투자가 반반씩 나뉘어져 있다. 이외에 사회간접자본(SOC)이나 중소기업 지원 위한 차입금 등 공공부문에 7조7000억여원이 투자돼 있다.
세계은행은 지난 2000년 미국 일본 등 세계 22개국 공적연금의 기금운용실적을 분석하면서 국민연금의 기금운용 수익률이 가장 우수한 것으로 평가한 바 있다. 기획예산처도 2000년부터 2002년까지 국내 각종 연·기금 평가에서 3년 연속 자산운용분야 1위에 국민연금을 꼽아 국민연금은 2003년도 심사평가가 면제되기도 했다.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영본부 관계자는 “최근 운용수익률이 다소 낮아지고 있는 것은 금리하락과 경기 침체 등의 문제로 연금만의 문제가 아니다”며 “안정적 수익이 확보되는 채권에 대부분을 투자하고 수익성이 높은 주식에 적은 규모를 투자하는 전략으로 자산운용의 포트폴리오를 짜고 있다”고 말했다.
■ 기금운용 구조 비교
비상설 기금운용위가 최고 심의·의결기구
국민연금 기금의 운용계획과 집행, 평가가 각각 다른 기관에 의해서 진행되고 있다. 1999년말 자산운용 전문조직으로 기금운용본부가 국민연금관리공단 내에 출범했다. 기금운영본부는 민간 금융기관에서 자산운용 경험을 축적한 펀드매니저 가운데 외부에서 공개채용한 기금운용본부장을 비롯해 경력이 많은 금융전문가 55명이 기금운용을 전담할 수 있게 했다.
기금운용계획의 최종 심의 의결 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는 현재 보건복지부 내에 비상설 회의체로 되어 있으며 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는다.
현재 기금운용계획은 자체 전문인력과 외부 전문기관의 컨설팅을 통해 계획 초안이 작성되고, 근로자와 사용자 등 가입자 대표 14인과 정부대표 7인 등 모두 21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기금운용위원회 의결과 국회 동의로 확정된다. 이렇게 확정된 계획에 따라 기금운영본부에서 구체적인 기금운용이 집행된다.
국민연금공단 관계자는 “가입자 대표가 과반을 차지하고 있으나 위원회 숫자가 10명을 넘어서면 사실상 제대로 회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며 위원 숫자 조정이 필요함을 시사했다.
집행 뒤 얼마나 수익률을 올렸는지 제대로 운용을 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평가는 기금운용위 산하에 있는 기금운용 실무평가위원회에서 이뤄진다.
세계은행이 2002년 부과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캐나다 아일랜드 일본 뉴질랜드 스웨덴과 부분적립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 기금운용관리체계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일본을 제외한 5개국이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다.
일본은 정부위원으로만 구성하고 있다. 6개국 모두 외부감사보고서 제출을 의무화하고 있고 우리나라를 제외한 5개국이 기금 외부운용자에게 일정 비율을 맡기는 의무비율 규정을 두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 운용 원칙은 무엇
“외부 입김 없는 기금 운용이 핵심”
국민연금을 다루고 있는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연금과 정부재정은 다르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재정은 이미 정부 소유이며 적자재정으로 운용할 수 있으나 연금은 국민이 나중에 찾아가는 노후보장을 위한 돈이기 때문에 안정성이 최우선이다.
따라서 기금 운용의 원칙은 연금가입자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기금 운용의 투명성과 공공성, 수익성 등도 주요한 원칙이다.
국민연금공단 관계자는 “안정성 담보 뒤 수익성을 고려해야 하며 단기 경기부양 역할을 하기보다는 장기적인 재정 안정에 기여하는 방향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최근 경제부처의 국민연금 발언에 제동을 건 이유도 이와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경제부처의 주장처럼 경기 부양에도 도움이 되고 기금 운용 안정성에도 문제가 없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면’ 논란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최근 난데없는 기금운용위원회 독립성 논란에 의아해 하고 있다. 국민연금공단 연구센터 관계자는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 그동안 운용 실적도 괜찮았고 관련자들의 도덕적 해이도 보이지 않았다”며 “이런 상황에서 갑작스런 기금 운용의 독립성과 전문성이 화두로 떠올라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기금운용위원회를 공사화하는 방안에 대체적으로 반대하는 분위기다.
공사화하면 대체적으로 단기투자 방향으로 기금이 운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복지부와 연금공단은 기금운용위를 상설화하는 방안을 지지하고 있다. 현재 이를 담은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국회에 정부입법 형식으로 발의된 상태다.
연금공단은 또 기금투자의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연금공단은 앞으로 △투자 회임기간이 긴 SOC(사회간접자본) 투융자 △해외 채권·주식 투자 등을 늘려나가기로 했다. 이를 위해 다양한 사업과 상품을 발굴하며 해외투자 역량을 강화할 방침이다.
/범현주 기자 hjbeo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