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 복원도 좋지만 남의 나라 곰 멸종시키지 않는 게 더 중요”……‘아시아 곰 워크숍’ 한국대표단 망신
(국민일보 2005.8.13)
국제회의 석상에서 한국인의 웅담 기호가 도마에 올라 국제적 망신을 당한 사실이 밝혀졌다.
지난 8월 6일 일본 홋카이도(북해도) 삿포로에서는 ‘아시아 곰 워크숍’이 열렸다. 국제포유류학술회의에 참석한 55개국 학자 중 곰 전문가 80여명이 따로 모여 아시아 지역 곰 서식 현황과 보호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한국 대표단은 2001년부터 국내 반달곰 4마리,연해주 반달곰 6마리,북한 반달곰 8마리를 지리산에 방사한 ‘반달가슴곰 복원 사업’의 성과를 발표했다. 이 사업은 세계 최초의 새끼 곰 야생화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의미가 크다.
그러나 이 회의에 참석했던 서울대 수의학과 이항 교수는 “복원 성과를 자랑하러 갔는데 발표가 끝나자 기대와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졌다”고 전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한상훈 반달곰복원팀장의 20여분에 걸친 발표 직후 1시간 가량 이어진 자유토론에서 러시아 학자가 먼저 포문을 열었다.
그는 “러시아 불곰 밀렵이 최근 급증했는데 주로 중국과의 접경지역에서 많이 벌어진다”며 “웅담 밀거래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밀렵된 러시아 불곰 웅담의 상당수가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유입되고 있어 뜨끔했다”고 말했다.
곧이어 스리랑카 대표는 “우리나라에서는 곰을 먹지 않고 가죽도 사용하지 않는데 얼마 전부터 일부 지역 원주민들이 경쟁적으로 곰을 사냥하고 있다”며 “사정을 알아보니 그 지역에 한국 기업이 진출한 뒤 한국인들이 비싼 값에 웅담을 사가고 있었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학자도 “우리도 요즘 곰 밀렵이 큰 문제인데 한국 기업인과 이주민 관광객들이 웅담 밀거래에 깊이 관련돼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후 토론 테이블에서 반달곰 복원 사업은 화제가 되지 못했다.
학자들은 중국과 한국의 웅담 수요가 아시아 곰 밀렵이 급증하는 대표적 원인이라고 입을 모았다.
토론 말미에 한 외국 학자는 “곰을 복원하는 것도 좋지만 남의 나라 곰을 멸종시키지 않는 게 더 중요한 일 아니냐”며 넌지시 한국을 꼬집기도 했다.
이 교수는 “토론이 끝나갈 무렵엔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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