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전.... "이순"이란 문턱을 넘을땐 그냥 무덤덤 하게 생각됫는데, 올해는 "회갑"이라는 소리를 들으니 무언가 마음이 좀 착잡 해 지기도 한다. 벌써 내가 "회갑"이라는 연륜이 쌓였구나... 하고. 그러고보니 나도 이제는 세월의 무게를 힘들게 지고 있엇구나 하는 느낌을가진다, 몸이 예전같지 않다는걸 여러면에서 생각하게 되는데, 산을오를땐 몇해 전 만 해도 그냥 차고 올라갔는데 요즘에는 숨이차고 다리가 힘이 좀 빠져서 쉬엄쉬엄 올라가는편이다 내 자신이 느끼지 못하는 순간에 몸은 세월의 퇴적물이 쌓여 있엇는 것 같기만 하다.
확실히 내가 늙어감을 의식할수있는것은 마음이 여려진다는거다.
텔레비를 시청할땐 난 헤어진 가족을 만나는걸 즐겨본다 몇십년 헤어져 있다 만나는 장면은 꼭 내 잃어버린 가족을 만나는것 같이 기쁘고 기분이 정말 좋다^^ 붙들고 그동안의 애한의 눈물을 쏟아내는걸 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인다 어떤 땐 마냥 꺼이꺼이 울어서 집사람 이나 자식들 보기에 창피해서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조그만 애처러운 장면만 나와도 마음이 뭉클하고 눈가엔 이슬이 맺히는것은 옛전에 없었는 나이듬에서 오는 변화가 아닌가한다.
그러고보니 서울에 산지도 어언 30년 하고도 몇해 더 세월이 흘렀다.
다가오는 시간은 뎌듸오는것 같은데 지나간 세월은 정말 빠르게 후딱 지나간 것 같다. 언제 이렇게 세월이 흘러갔는지 거짖말 같기만하다. 내가자란 곳은 지리산자락 하늘이 맏닿은 경남하동 산골마을이다 해방되는 해 우리도 잘살수있다고 부모님 께서 일본에서 귀국하여 고향인 시골마을에 정착하셨다 초등학교가 있던 면 소재지는 그때는 일제때 건축한 지서, 면사무소가 제일 큰 건물이고 그외는 초라한 초갓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군락지같은 동네를 이루고있었다.
우리 국민학교시절은 모다 못먹고 헐벗은 시절이다.
해방된지 얼마지않아 하나같이 모두가 다 남루한 옷차림에 얼굴은 마른버즘이 피고 몸에는 부스럼같은 걸 달고다닌 아이들이 태반이었다 워낙 먹을것이 부족해서 영양실조가 만연해 붉은 흙벽을 뜯어먹기도하고 회충약을 먹으면 기생충이 한바가지가 나온아이도 있엇다 면소재지에 그래도 초등학교가 2군데서 3곳으로 늘어나기도 햇는데 면소재지 치고는 지역이 제법 넓었다.
지금도 눈을감으면 아련하게 떠오르는 그시절 그곳에 쇠잔 해 가는 마음을 던져두고싶다. 포플러 가로수 연두빛으로 물 오르면 나풀나풀 나비들 교실창가로 모여들고 봄바람에 먼 산 아지랑이 온 대지를 감싸면 붉은 작약 순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민다 햇살 듬뿍받은 보리싹들은 우리 아이들처럼 쑥쑥 키가 올라오고 들판엔 마늘향이 짙어만 간다.
지금은 좀 다르긴하지만 그때는 농경사회다보니 학교마치고 집에오면 거의다 집안일을 도와야했다.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지게를 지고 풀이나 나무를 하러 산으로 행차를 하지만 저학년때는 소 풀먹이는 일과 돼지 먹이는 일이 당번으로 정해진다.나는 유독 돼지를 좋아해서 먹이는 항상 내 차지이다 돼지먹이는 딩겨(나락껍질)가 주종이지만 들판에나가 지천에 깔려있는 개구리나 뱀을 잡아서 보양식으로 자주 제공하게되고 그걸 먹고자란 돼지는 성장이 엄청 빠르고 나중에 우리형제들 공부 뒷바라지에 한몪 하게된다.
개구리는 도랑 주변에 우글거리는데 주로 참개구리만 잡는다. 도랑주변을 툭툭치면서 걸으면 개구리가 홀짝뛴다 그러면 앉을자리를 미리포착했다가 막대기로 정확하게 내리치면 뒷다리 쭈~욱 뻣어버린다.
뱀은 꽃뱀을 주로 잡는데 꽃뱀은 독도없으면서 사람을보면 놀라서인지 코브라처럼 머리를 바짝 치켜들고 혀를 낼름거리고 째려본다 그러면 그냥 골프채 스윙하듯 날려버리면 몇 미터 날아가서 즉사한다 바로 깡통에 줏어 담기만 하면 된다.
간혹 살모사나 독사를 만날때도있다.
사람들은 독사가 사람들을보면 달려드는 것으로 잘못알고 있는데 사람의 인기척만 느끼면 바로 도망을 간다 간혹 공격을하는경우는 독사가 미처 인기척을 느끼지못하고 사람을 만나 놀랐을 때이다. 독사가 도망을 가는건 풀섶이 움직이는 걸로도 바로 알수가 있고 또 쉬~익 소리도낸다 따라가서 잽싸게 막대기로 머리쪽을 눌리고 미리 준비한 넝클로 만든 올가미를 졸라매서 막대에 달면 끝난다 독사는 대가리가 삼각형이라서 잘 빠지지도 않는다.
어릴때는 엉뚱한 짓도 하게되고 사람은 잔혹한 면도있다.
독사를 산채로 돼지우리에 넣으면 그 특유의 공격성은 어딜가고 죽은듯 옹크리고 가만히있다 반면 돼지는 꿀꿀거리며 무언지도 모르고 그냥 앞발로 지긋이밟고 대가리고 뭐고 그냥 씹어먹는다.고양이와 쥐처럼 천적관계인지 아니면 독한 분뇨냄새에 마취가 되어서인지 한 성깔하는 독사도 맥없이 돼지에게 씹어먹히는 걸 보면 참 알수가없는 생태계의 섭리다.
돼지는 보기보단 아주 영리한 동물이다 그러나 식성만은 어떤 동물도 따를수가 없을게다. 개구리고 뱀이고 육식이든 채식이든 못 먹는게 없을정도로 욕심은 타고나서 돼지우리에 혼자이건만 뭘 먹을때는 죽통에 앞발을 담그고 좌우로 힐끗힐끗 쳐다보면서 누가 뺏어 가는줄로만 알고,그 지독한 욕심때문에 취하는 특유의 방어자세로 일관한다.
그렇게 잘처먹어서 살이 지륵지륵 오르면 인간에게 삼겹살로 보답하니 그런 돼지의 욕심도 흠이라 생각되지않고 좋아보인다.
돼지의 욕심은 죽어서 인간에게 삼겹살을 남기지만,돼지보다 못한 인간들도많다.
우리 인간들은, 세상을 다 주어도 마다하지 않는 욕망은 천하디 천한 천박한 삶으로 이어진다.어디에 쓸것인지 목적의식도없이 남이야 죽든말든 있는대로 긁어모으고 온갖 짖거리로 돈이라면 안면 몰수에다 지성도 학식도 하찮은 간판이다 그렇게해서 악착같이 긁어모아봣자 아까워 쓰지도못하고 재미는 딴사람이본다 모든걸두고 흘련히 떠나며 후회하는 욕심많은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고 애처롭다.
나이가 이순을넘기고 몸이 옛날 같지가 않을수록 어린 그 시절이 빛바랜 흙백사진처럼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 아름다운 그곳에서 어린시절을 보낸것을 나는 행운으로 여긴다. 내 마음이 늘 풍요롭게 생각되는것도, 삶이 따분하고 우울하게 생각되지 않는것도... 우리 고향의 정서가 몸에 배어있기에 가능하리라 생각되고, 누구보다 느낌이 넉넉하고 건강한 영혼을 지닌것도 이런 시골에서 자랄수 있엇기에 생각할수록 참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내 고향 하동북천 무궁한 발전을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