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속, 「전국최초 혈서 자원입대 전남지역 학도병 6.25출전 70주년 기념식」
월남전참전자들, 학도병 최초 자원입대일 7월 13일 기념식 거행
월남전참전자회 전남지부(지부장 고효주)는 코로나19와 폭우를 무릅쓰고, 북한의 6.25남침으로 조국이 적화될 위기에 처했던 1950년 6.25 직후, 나이 어린 전남지역 중학생 183명이 전국에서 가장 먼저 혈서를 쓰시고 학도병으로 자원입대하셨던 충혼을 기념하였다.
어린 생명을 던져 나라를 지키다 산화한 선배들의 넋을 추모하고 살아계신 분들께 감사하는「전남지역 학도병 6·25출전 70주년 기념식」은 6.25참전 학도병 충혼선양회(회장 고효주) 주최, 월남전참전자회 전남지부 주관으로 70년 전 학도병들이 자원입대하셨던 바로 ‘그 날 그 시간’ 7월 13일 11시, 여수시 오림동 소재 6.25참전 학도병 기념탑 앞에서 거행되었다.
이날 기념식은, 코로나19 창궐 예방을 위한 행사금지와 장마 폭우가 계속됨을 무릅쓰고 참석을 희망하는 6.25 및 월남전참전 국가유공자와 군 관계자들의 기념탑 참배로 대신하였고,, 정식 기념식은 추후 코로나19 사태의 진정국면을 감안해서 ‘국군의 날’ 즈음 등 가을에 개최키로 하였다.
1950년 7월 13일, 입대할 의무가 없던 전남지역 (여수.순천.광양.보성.고흥.강진 등) 17개 중학교 15~18세의 학생 183명이 '조국수호“ 혈서를 쓰시고, 순천에 임시 주둔하던 국군 15연대에 자원입대, 6개소대의 독립 학도중대로 편성되어 9일간의 기초훈련만 받은 후 전선으로 투입되었다.
한편, 북한군 6사단(사단장 방호산)은, 아군의 낙동강 최후방어선 전열구축 이전에 방어병력이 전혀 없고 무방비 상태이던 경남 하동 및 진주를 7월 25일 중으로 점령하고, 이어 마산을 거쳐 임시수도 부산으로 침공해 전쟁을 7월 31일 이전에 끝낼 계획으로, 25일 새벽, 전남구례를 출발, 섬진강변을 따라 경남하동 화개장터 앞을 은밀하게 지나가다가 기다리고 있던 학도병중대의 매복공격을 받게 되었다.
학도병중대는, 소련제 전차 및 대공화기 등으로 중무장한 인민군 최정예 6사단 선봉대대(전원 중국 공산당 팔로군 출신)를 M1소총만으로 매복 공격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적의 진공을 15시간 지연시키는 치열한 혈투를 벌여, 그날 진주까지 점령하려던 북한군의 진로를 차단해 버렸다.
이 ‘화개전투’에서 학도병중대는 70명이 전사 및 실종되는 희생을 치렀으나, 그 희생으로 말미암아 7월 31일 이전 부산 점령을 목표로 기습적으로 동침(東侵)하던 북한군의 은밀한 전략이 노출되었고, 다급해진 8군사령관 워키장군이 사단장 딘 소장이 포로가 된 미군 24사단을 진주로 이동시키고, 부산에 상륙하는 미군병력 전체를 하동전선에 긴급 투입하는 등의 총력 저지작전을 펼칠 수 있는 시간을 벌어 주었다.
학도병들의 희생은, 미군의 길안내를 자청했던 초대 육군참모총장 채병덕장군의 하동에서의 7월 27일 전사, 하동에서의 미군 제19연대 3대대의 전멸 등의 희생과 함께, 진주함락을 7월 30일까지 ‘지연’시켜 낙동강 최후방어선 전열구축에 필요한 절대 절명의 골든타임을 획득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무훈이었다.
국가가 부르기도 전에, 스스로 자원 입대해 화개전투, 진주촉석루전투, 진동사수전투 등에서 산화하신 학도병들의 푸르른 충혼은, 월남전참전자회 여수시지회(당시 지회장 고효주)가「월남전참전 후배들이 6.25참전학도병 선배들을 챙기자!」라는 구호로 2014년 7월 13일 처음으로 당시 월남전참전자회 우용락 회장 및 전국 시·도지부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64주년 기념식을 거행함으로써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었다.
이들 월남전참전자들은 ,매년 7월 25일 하동군청 주관으로 전투현장에서 개행되는 '화개전투 전사 6.25참전학도병 추도식' 에도 빠짐없이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