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성명
평등과 평화의 내일로 나아가자
8·15 58주년을 맞이하여
최근 잇따르고 있는 동반 자살은 우리 사회가 처한 현실을 여실히 드러낸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생활고에도 불구하고, 어느 곳에도 도움을 청할 길이 없는 우리 서민들의 유일한 선택이 자살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누가 만들었는가? 서민의 생활을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하는 고금리 사채와 경제적으로 곤궁한 사람들을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신용불량제도를 옹호하는 현 정부가 자살 행진의 책임을 져야 한다. 서민의 주머니를 털어 부자의 뱃속을 챙겨주는 노무현 정부의 경제철학이 우리 사회 총체적 위기의 주범이다. 민주노동당은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이 자살 공화국을 만들 것임을 오래 전부터 경고하고, 고금리제한법과 신용회복법의 제정을 호소하여 왔다.
서민을 자살로 내모는 또 한 가지 원인은 OECD 최저 수준의 사회복지 현실이다. 한국 국가 재정에서 사회복지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제3세계 나라들에도 미치지 못하고, 헌법이 정한 국민의 사회복지 수급 권리와 국가의 사회복지 급여 의무는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질병이나 장애, 노령 등으로 인해 경제활동에 나설 수 없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우리 사회가 해주는 일이라고는 투신할 높은 빌딩과 값싼 독극물 뿐이다. 나날이 떨어지고 있는 출산율 위기 현상이 보육과 교육을 전적으로 개인에게 떠맡기는 무능한 정부에 대한 항의, 출산 파업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현실이 이처럼 열악함에도, 노무현 정부는 국민연금 개악을 시도하는 등 시대에 역행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국민을 보살피지 않는 정부는 스스로 정부이기를 포기한 것이라 판단한다. 평등한 교육 기회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사회적 평등을 위한 최소한의 요건이다. 우리 사회는 이미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위한 충분한 준비를 갖추고 있다.
우리 국민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노동자를 적대시하고 노동관계법을 개악하려는 노무현 정부의 시도이다. 노무현 정부는 "과격한 노동운동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와 경제가 어렵다"는 악선동을 퍼부어 대고 있다. 멀쩡한 노동자를 내쫓는 정리해고제와 마구잡이로 비정규직을 만드는 파견근로법을 만든 것이 노동운동인가? 쥐꼬리만한 최저임금을 결정한 것이 노동운동인가? 국민의 피땀으로 이루어진 공기업과 대기업을 외국 자본에 푼돈으로 내다 판 것이 노동운동인가? 중소기업에게 불공정한 거래와 계약을 강요한 것이 노동운동인가? 노무현 정부가, 외국 자본과 재벌 중심의 경제 정책을 버려야 비정규직이 살고 경제가 살 수 있다. 요즘 노무현 정부는 유럽식의 노사관계를 도입하겠다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그러나 독일식이든 네덜란드식이든 특정한 노사관계 형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노동자를 평등한 대화 상대로, 나라의 주역으로 인정하려는 태도 변화가 우선되어야 한다. 노무현 정부는 노동운동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버리고, 왜 노동운동이 발달한 나라들에서 경제가 발달했는지를 직시해야 한다.
최근 노무현 정부는 "국민소득 2만불"이라는 장미빛 환상을 선전하고 있다. 경제가 성장하고 소득이 증대된다는 데 반대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외형적 성장에 치우친 경제정책은 서민과 노동자의 살림살이를 더욱 어렵게 하고, 빈부격차를 급격히 심화시킨다. 더구나 노무현 정부 들어 계층간 소득 차이가 사상 최대로 벌어지고 현실은 숫자 놀음에 불과한 '성장' 정책을 버려야 할 시기가 왔음을 웅변한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 중인 금융과 유통 중심의 '동북아 경제 중심' 정책은 전체 고용 규모를 축소시키고, 제조업의 공백화를 초래할 것이다. 우리 현실에 맞지 않는 동북아 경제 중심 정책, 국민의 노동권과 환경권을 침해하는 경제자유구역, 농업을 말살하는 시장개방, 환경을 파괴하고 국고를 낭비할 뿐인 대규모 개발 사업은 즉각 철회되어야 한다. 이제 우리 사회는 잠재적인 성장 동력을 소진하는 고성장 정책을 버리고 내실 있는 적정 성장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제 우리 사회는 무조건적인 성장 일변도에서 벗어나 분배를 통한 성장 전략을 택해야 한다.
정치 개혁에 있어서는 부패한 보수 정치권과 노무현 정부의 무책임함이 극에 달하고 있다. 보수 여야당은 법률이 정한 시한이 넘도록, 아무런 개혁방안을 내놓지 않았다. 이는 공직선거법·정당법·정치자금법 등 제도적 틀을 고쳐 정치를 혁신하라는 국민의 염원을 저버린 배신 행위이다. 개혁을 저버린 보수 여야당은 당내 권력 다툼과 선거 때마다 되풀이해온 신장개업 신당 놀음으로 국민을 기만하고 있을 뿐이다. 진정한 정치 개혁은 새 간판을 내걸거나 정치인 얼굴 몇을 바꾸어서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진정한 정치 개혁은 재벌과 외세에 빌붙지 않는 당당한 정치 주체, 일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이룬 정치세력, 이념과 정책으로 경쟁하는 정당이 출현하고 성장할 때만 실현 가능하다. 민주노동당은, 정치관계법의 조속한 개정과 정당명부선거제의 전면 실시를 다시금 주장한다.
정전 50년인 올해 전쟁의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막고, 한반도에서의 영구적인 평화를 이루는 것은 온 민족의 가장 절박한 과제이다. 우리 민족 앞에 닥친 전쟁 위기의 원인을 북한 정부의 경직된 외교 정책에서 찾을 수도 있겠으나, 한반도에서의 긴장 격화와 무력 충돌 가능성은 미국 부시 정부의 호전적인 팽창 정책과 대북 봉쇄 정책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전임 정부들이 추진해온 대북 화해 정책을 오히려 후퇴시키고, 미일 군사동맹에 종속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노무현 정부 역시 위기의 한 주범이라 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는 미 행정부를 추종하는 정책을 버리고, 6자 회담에 능동적으로 임하여 평화의 주선자가 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미국에는 대북 압살 정책의 폐기와 확정적인 평화 보장을 요구하고, 이북에는 핵프로그램의 공개와 완전 폐기를 설득해야 한다. 나아가 사기업 중심의 대북 경제 사업에서 국가 차원의 대북 협력으로 전환하여, 민족 평화와 통일의 기반을 충실히 쌓아가야 한다. 민주노동당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영구적인 동북아 평화, 민족 통일을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도 아끼지 않을 것임을 온 국민 앞에 약속한다.
2003년 8월 15일
민주노동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