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8월 19일) 정부와 여당이 마련한 국민연금법 개정을위한 입법예고안이 발표된 직후부터 불신과 비판의 대상이 됐고이를 둘러싼 논란은 지금까지도 진행되고 있다. 한마디로 제도개편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사회적 합의 없이 국민연금제도가 실시된다 해도 이는 많은 사회적 비용을 동반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국민연금이 기능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는 제도 실패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 즉, 동의를 구하는 데 실패한 개혁적 조치는 이미 그자체가 정당성의 문제에 봉착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현행 국민연금제도에서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며 입법예고안이 제시한 개선 방안이 무엇인지 그 요지를 보자. 현행 국민연금제도가 갖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는 1988년 시행 초기부터유지해온 ‘저(低)부담, 고(高)급여’의 기형적 구조에 기인한다. 여기에는 제도의 순응성을 높여 조기 정착을 도모하기 위한 정책 논리가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구조에서 연금 재정의 건전성을 기대한다는 것은 행운을 기대하는 것과 다를 바없다.
올해 처음으로 도입된 국민연금 재정 계산 결과에 따르면 연금재정이 2036년에 처음으로 수지에서 적자가 발생하고 지금의 18세 이하 계층이 연금을 수급하는 2047년에는 기금이 완전 소진된다는 잠정적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접근하고 해결할 것인지가 관건이다.정부의 입법예고안은 이 문제에 대한 가장 알기 쉬운 현실적 대안으로 간주된다. 즉, 소득대체율의 하향 조정과 보험요율의 상향 조정이 그것이다. 그 내용을 보면 국민이 보험료를 불입한 대가로 받는 국민연금 수령액을 현행 연금가입 기간 평균소득 대비60%에서 2008년에는 50%로 낮추고 국민이 부담해야 하는 국민연금 보험료는 현행 9%에서 2010년부터 5년마다 1.38%포인트씩 인상, 2030년에는 소득액의 15.9%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한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재정 건전성 확보’와 ‘소득 보장의 적절성’을담보하기 위한 정부의 입법예고안은 불가피해 보인다. 왜냐하면현행 제도의 유지가 곧 공적 사회 보장의 근간을 위협하고 나아가 사회 통합과 안정을 저해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보다 먼저 출발한 복지 선진국들의 입장을 고려한다면 개혁의 필요성은 더욱 더 명확해진다. 예컨대 우리나라의 현행 보험요율 9%는 일본 17.35%,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험요율 17.5%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반대로 우리나라 현행소득대체율 60%는 일본 50%, 캐나다 25%보다 높은 수준이다. 우리 사회가 이만큼 복지적이란 말인가?
개혁을 위한 수술은 빠를수록 좋다. 포기할 수 없다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국민적 지혜가 요구된다. 특히 국민연금은 노인에대한 경제적 보장과 부양의 책임을 우리 사회가 함께 짊어지고자하는 사회적 가치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분배 정의에 기초한 소득 재분배의 기능을 동반하기 때문에 국민들의 참여가 극대화될수록 그 가치와 의미는 커지게 된다.
서구의 복지 선진국들도 이미 복지 축소를 골자로 하는 복지 개혁을 단행했거나 진행중이다. 우리는 우리보다 앞서 갔던 복지선발 주자들의 뼈아픈 체질 개선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시행착오를 줄이는 ‘후발주자의 기회’를 살려야 한다. 사회보장의 공급 주체인 정부는 먼저 쟁점이 되고 있는 내용들을 정확하게 진단해 국민에게 알리고 나아가 대책을 수립할 때 숨김없이국민의 협조를 구해야 할 것이다.
국민연금의 (잠정적) 수혜자인 국민도 지나친 개인적 합리성의추구를 자제해야 한다.지금은 개혁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는 정부와 국민 사이의 일차적인 신뢰 확보가 국민연금제도의 안정적정착을 위해 무엇보다도 시급히 요구되는 중요한 때다.
[최낙관 / 서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