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아이들이랑 소풍을 떠나고 싶어요
햇빛이 쨍쨍 내리 쬐는 가을날에 말예요
길가 양옆으로는 코스모스가 피어있는 길이라면 좋겠어요
소달구지 덜컹대는 울퉁불퉁한 길이라면 더욱 좋겠구요
걸음마 중에 있는 남편은 몇 번이고 넘어지겠지요
넘어지면 일어나면 되겠지요
다시 또 넘어지면 일어나고 몇 번이고 하다보면 오솔길에 도착하겠네요
오솔길을 가다보면 골짜기의 냇물에서 헤엄치는 예쁜 도룡뇽도 만날 거구요
어제 밤에 밤잠 아껴가며 쌋던 김밥이랑, 빨간 사과 5개
아직은 아기 같은 남편 먹을 거 새우깡 세 봉지
그중에 한 봉지를 터트려 마중 나온 도룡뇽 한 잎 넣어주고요
그러다보면 떨어진 알밤 주우러온 다람쥐도 과자한닢 달라겠지요
줍다 남은 알밤은 우리도 몇 개 주워 올까 바요
추석날 차례상에 올려 보려 구요
올 추석 차례 상은 더욱 푸짐 하겠네요
우리가족 모두가 함께 나와 모은 정성이니까요
조상님께서도 더욱 좋아하실 거예요
그렇게 하면 우리가족 소원을 들어 주실 지도 모르겠네요
지금부터 3 년 전
우리는 당신처럼 행복하지 않았던가요
그러다 남편은 공직생활을 빼앗겼고, 활활 타오르던 산불은 우리가정을 시샘했답니다
횡천면 여의리 안양산의 붉은 혼이 무심하게도.........
2000년 4월 12일에 말입니다.
그로인해 남편은 국가 유공자의 훈장을 달았답니다.
훈장은 달았지만 너무나 값진 훈장이라서 값을 많이 치러야 되나 봐요
병명은 뇌실 출혈
3급 장애의 훈장 이래요.
우리 가족은 이 값진 훈장을 얼마만큼 깊이 간직해야 할까요?
가슴으로 찢겨진 마음을 어찌 할까요?
이 찢겨진 마음을 어떻게 채워 볼까요?
오늘도 어김없이 해는 뜨는데........
하루를 거울삼아 한달을 살고
달이 지나면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는데.....
그러다 보면 우리남편 얼만큼 나아질까요?
하나, 둘. 셋.
기약 없는 운명의 노래로 빈 마음을 가득 채우고
한발 두발 내딛는 남편의 발걸음에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은 남았네요
나에게는 사랑하는 당신이 있습니다
나는 당신을 언제라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하나가 나에게는 얼마나 소중한 줄 이제야 알았습니다
2000년 봄날에 당신의 운명은 장애자의 길을 택하였습니다
이 하나가 나에게 생의 큰 낙오 점을 남겼습니다
채 피지도 못할 당신의 운명이, 이다지도 까만 밤을 하얗게 물들일 줄 몰랐습니다
인생의 흑과 백의 갈림길에서, 헤매 이던 지난날들을 까만 흑표지로 뒤덮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절망은 없습니다
2000년의 봄날에 공직자의 길을 걷던 당신은
몸과 마음을 송두리째 던져
활활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국가의 부름을 받았으니 말입니다
피 끓는 애국정신의 혼을 그대로 물려받을 것입니다
이제는 한 가닥 희망이란 것은 ?
장애인의 길을 등지고 가야할 당신의 울 이 되어드리는 것뿐입니다,
나에게는 소중한 당신이 있습니다
비록, 당신은 장애인이 되었을 지라도
2000년의 봄은 당신에게 큰 선물을 주고 간 가장 따스한 봄 이었습니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오면 가을이 머지않았네요
“여보,”
“내년 가을 날 우리 다시 그곳으로 찾아 가 봐요”,
울퉁불퉁한 오솔길을 넘어 지면서 말예요
다람쥐도 도룡뇽도 많이 컷 겠지요
또다시 왔느냐고 인사 하겠지요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은 ?.....
당신의 운명이 바뀌지 않는다는 거예요.
사계절이 다 지나갔는데 말예요.
가족들이 자는 머리맡에서 그들의 온기를 가슴에 담습니다.
이 온기가 세상을 살게 하는 힘이자 나의 존재 이유겠지요
밉살스러울 때도 있지만 곁에 있어 든든한 당신
올해가 다가기전
“내년에는 더욱더 사랑 할래요” 라고 쪽지를 적어
당신 손에 꼭 쥐어 줄까 봐요
그것이 나의 소망 이예요
당신의 아내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