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신문 2월 13일자에 실린 김소현 선생님 기사입니다.
청학문화체험학교 교장선생님이며
2003년 최참판댁에서 판소리공연을 하여
방문한 관광객들에게 하동의 좋은 문화를 보여준 선생님에 관한 글입니다
강촌별곡](5)
하동 악양에 사는 소리꾼 김소현씨
** 강촌별곡- 5 하동 악양에 사는 소리꾼 김소현씨 겨울 섬진강. 바싹 마른 벚나무 사이로 스치는 백사장이 유난히 넓고 희 다. 멀리 지리산의 준봉(峻峯)들은 하얗게 눈을 인채 까치발을 하고 멀리 남 해까지 내려다 보고 있다. 코끝까지 찡한 박하향 같은 겨울 바람을 들이키며 닿은 곳. 대하소설 「토지」의 주무대인 하동
악양은 곡식을 까부르던 키를 닮았다.
산들에 빙 둘러싸인채 혹 답답함은 너른 섬진강으로 토해내고 있는 품세
다.
도란도란한 마을과 논들에 봄볕이 가득한 날, 소리꾼 김소현(46)씨를 찾
았다.
하동군 악양면 매계리 청학문화체험학교. 악양벌과 복원된 최참판댁을 지
나 5분 남짓한 거리에 위치한 이곳은 본래 초등학교 건물이다.
운동장 한켠에서 나무 손질을 하고 있는 김씨가 손을 툭툭 털며 악수를
건넸다.
손은 부드러웠지만 눈빛은 수도 없을 희로애락을 거뜬히 넘겨낸듯 강렬하
다. 웃음이 참 밝다고 느낀 순간 뒤로 질끈 동여맨 머리가 그의 팍팍한 인
생 여정을 말해주고 있었다.
김씨는 이곳 사람이 아니다. 전남 남원에서 태어나서 그곳에서 소리를 배
웠다. 그의 나이 19세때 동편제무형문화재 강도근(96년 작고)옹의 문하에
서 공부를 시작했단다.
『남원이 본래 소리가 흔한 지역입니다.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됐고 또
흉내내다 보니 자신도 있었고 그래서 주저없이 선생님 밑으로 들어가게 됐
습니다.』
끼와 욕심은 넘쳐났지만 소리 공부는 만만찮았던 모양이다.
『니 놈은 아직 멀었다』는 스승의 꾸중에 수시로 지리산으로 가출해(?)
목구멍에 피를 쏟으며 소리를 만들었다.
이 골짜기 저 골짜기, 이 폭포 저 폭포, 이 봉우리 저 봉우리를 옮겨 다
니며 독공(獨工)의 쓰린 시간을 보냈다. 형제봉에서 내려다 보이는 악양은
그때 스쳐 지났다.
『강은 힘차고, 산세는 강하고, 들판은 호방하고. 참 좋은 곳이구나하는
인상을 받은 것 같습니다. 왠지 동편제 한 자락이 절로 나올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죠.』
하기야 하동도 예부터 남원, 구례, 진주, 창원, 대구 등과 아울러 동편제
가 성행했던 지역이다.
호탕하고 남성적이고, 힘이 넘치고 통성을 구사하는 동편제의 특성은 이
곳들의 자연과 그대로 닮아있다. 깊고 높은 지리산의 억센 기운이 그대로
뻗쳐있고 거친 강물은 콸콸 넘쳐나는 그런 것들.
김씨가 스승이 작고하자 끝내지 못한 소리 공부를 위해 악양으로 곧 바
로 찾아든 것도 이 때문인가 보다. 97년 봉은사 아래 봉대리에 자리를 깔았
다.
『소리는 자연과 그곳 사람들의 삶이 엮어내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가끔
하동으로 소리를 배우러 오곤 하셨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김씨는 강도근옹의 동편제 5바탕-춘향가, 흥부가, 수궁가, 심청가, 적벽
가-을 모두 물려받은 유일한 이수자다. 그로서는 스승의 가르침을 온전히
깨쳐야하는 업(業)을 걸머쥔 셈이다.
또 다시 득음(得音)을 향한 고통스런 길이 시작된다.
갑갑하면 자리를 박차고 지리산 구석구석을 헤맸고 지쳤다 싶으면 가까
운 섬진강 백사장을 거닐면서 불일폭포, 형제봉, 고소산성에 올라 목을 틔
웠다.
소리를 한다는, 그것도 사라져 가는 동편제를 한다는 소문에 제자들이 하
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자신의 공부에도 턱없는 시간이었지만 동편제를 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무
작정 이들을 물리칠 수도 없는 노릇. 그래서 전수 공간을 찾은 곳이 지금
의 이곳이다.
『온지 3년쯤 됐네요. 폐교가 다 그렇지만 엉망이었죠. 그래도 손질하고
청소도 하고 나니 지낼만 하더군요. 마치 살림할만한 사택이 있어 떨어져
지냈던 식구들도 부르고 그랬습니다.』
예서 가족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부인 박정선(43)씨도 소리꾼으로 동초제(동편제와 서편제가 어우러진 형
태) 판소리 보존회 회장인 오정숙여사의 이수자. 본래 경기민요를 했었는
데 93년 결혼한 후 남편의 스승인 강옹 문하에 들어 부부가 함께 소리를 배
우게 됐단다.
프로필을 들여다 보니 전국민요경창대회 대상 수상, 류관순 열사가 완창
발표회 등 화려하다.
『어째 부인이 더 잘나가는 것 같다』는 물음에 『맞습니다. 저보다 훨
씬 소리도 잘하고 바빠요. 집에 있을 때가 드뭅니다』며 껄껄 웃는다.
딸 새아(11)가 있는데 자연스레 소리를 배우고 있어 자식이자 전수자라
고 말했다.
공간도 좀 여유가 있고 해서 만들어 본게 문화체험학교다. 물론 먹고 사
는 것도 염두에 뒀을 테고 무엇보다 청소년들에게 「우리의 것」을 만나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곳에선 판소리를 비롯 자연염색, 동양화, 공예, 전통예절, 다도, 도자
기 만들기 등을 프로그램으로 운영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www.echunghak.org ☏882-4118)
판소리만 김씨 부부의 몫이고 다른 것은 선생들이 따로 있다. 한해 1천명
쯤이 다녀간다니 알차게 운영하고 있는 모양이다.
『노래가 만들어진 자연속에서 소리를 만나게 하고 싶습니다. 그래야 자
라나는 아이들이, 또 제자들의 목소리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진짜 동편제
가 되는 것이죠.』
이것이 도시의 유혹을 뿌리치고 김씨가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가장 큰 이
유이기도 하다.
김씨는 원정 공연의 바쁜 일정에도 인근의 놀이판(행사)에는 빠짐없이 참
여한다. 최참판댁에서의 토요 상설공연무대도 스스로가 원해서 만들었고 크
든 작든 무대만 생기면 부지런히 움직인다.
이 또한 가끔씩 흐트러지려는 자신을 스스로 묶어두는 멍에인 셈이다.
김씨의 바람은 하나다.
소리의 고향이자 마음의 안식처로 삼은 이곳과 어우러져 소리를 완성하
고 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영글게 하는 것이다.
까치 한마리가 힘겹게 버티고 있던 나뭇가지를 부러뜨리고 날아올랐다.
찰나 악양을 떠돌고 있던 동편제의 기(氣)가 김씨의 전신을 휘감아 돈다.
글= 이문재기자 mjlee@knnews.co.kr
사진= 김승권기자 skkim@k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