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민주노동당남해.하동위원회는 고 이경해 농민열사의 명복을 다시 한번 고개 숙여 빕니다. 좋은곳에서 우리350만 농민들과 이땅 민중을 위해 힘차게 싸우는 민주노동당을 지켜봐 주십시오.
"아버지 바람은 4백만 농민이 똘똘 뭉쳐 싸우는 것"
작년 추석 연휴, 멀리 멕시코 칸쿤에서 한통의 비보(悲報)가 날아들었다. 한국 농민운동가의 죽음, 그것은 세계화의 파도에 밀려 벼랑끝까지 내몰린 한국농업의 현실을 전세계에 알린 일대 사건이었다.
국내 농민.시민사회단체들은 고인의 1주기를 맞아 열사의 정신을 기리는 추모행사와 함께 WTO 쌀개방저지를 위한 대규모 집회를 예고하고 있다.
한국농업의 위기상황, 이경해 열사의 1주기를 앞두고 고인의 가족들을 만나 한 집안의 가장이자 농민운동가였던 그의 이야기와 우리 농업에 대한 가족들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올해 초 결혼한 고인의 둘째딸 이고운(28세)씨는 경기도 군포에서 남편과 6개월 된 아들 윤수와 함께 살고 있었다.
△이고운씨 ⓒ민중의소리 김철수
딸이 기억하는 아버지는 농업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던 사람이다. 겉으로 표현은 안했지만 평소 읽는 서적이나 모아둔 스크랩 등 관심분야를 지켜보면 농업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누구라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농업을 지키기 위한 활동도 많이 하셨고 농업에 관련된 어떤 정책적으로 일이 터지기라도 하면 외국에까지 나가 단식투쟁도 하시고 그렇게 현장으로 뛰어다니셨던 분이에요"
"농업으로 성공을 하셨던 적이 있는데 그때가 아마 90년 전후일 거에요. 그러다 우루과이라운드가 터지고 문제가 겹겹이 이어지면서 크게 피해를 봤죠.
소값파동에 우유파동에 값은 폭락하고 한때 우유를 버리곤 했잖아요. 목장일도 하면서 농사도 겸하셨었는데 농사라는 게 날씨라도 안맞으면 배추나 무우 썩어 나가는거고 그러다보면 망하는거죠"
"아빠는 바깥일에 열심히 뛰어드셨고 저는 집에서 엄마를 도와 농사를 지었죠. 3일에 한번꼴로 집에 들어오시곤 했어요. 상황이 어려워지면 소도 한두마리씩 팔고, 엄마 혼자 많이 힘들어 하시기도 했지요"
고운씨는 당시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큰언니는 외지에 나가 공부를 했고 막내동생 지혜는 나이가 어려 고운씨가 집에서 어머니를 도와 농사를 거들곤 했다. 그렇게 함께 농사를 짓던 어머니는 중3때 돌아가셨다.
딸이 말하는 아버지는 고집이 센 사람이었다. 고운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집안에서 아빠의 고집을 따라올 사람없을 정도였다. "큰일을 하시려고 그렇게 먼저 가신 게 아닌가 싶어요"
"초등학교때 아버지가 한농연(한국농업경영인연합)을 만드셨어요. 언젠가 전국대회때 아빠를 따라 놀러갔던 기억이 나요. 비가 너무 와서 땅이 질퍽질퍽한 데도 열정을 불태우는 농민들의 모습은 참 열정적이었어요. 물론 농민들만의 목소리긴 했지만 하나같이 뭉쳐 한 목소리를 내는 모습이 정말 인상에 많이 남았던 것 같아요.
어쩌면 지금 생각해 보면 아빠의 죽음에는 그런 한 목소리를 냈으면 하는 의미도 있었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들어요"
△작년 9월 20일 서울에서 열린 장례식에서 오열하는 유족들 ⓒ민중의소리 자료사진
고인의 장례식이 열렸던 작년 9월 20일. 시신을 이대로 묻을 수 없다며 청와대로 향하던 농민들과 운구행렬을 기다린 것은 경찰의 폭력이었다. 경찰은 농민들은 물론 유족들에게까지 폭력을 휘둘렀고 심지어 고인의 유해가 실린 운구차에까지 소화기를 뿌리는 등 상식이하의 행동을 벌여 유족들을 분노케 했다.
당시 고운씨가 경찰 앞에 나서 '우리 아빠는 농민의 아들이다. 경찰 폭력에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며 호통을 치던 모습이 방송을 타고 전국에 보도되기도 했다.
"왜 농민들만 이렇게 싸워야 하나"
쌀재협상 등 좋지 않은 소식들이 많이 들려오고 있다. 고운씨는 뉴스나 인터넷에 들어가 찾아보는 정도는 아니어도 들려오는 소식에 신경이 많이 쓰인다. "그럴 수 밖에 없죠. 아버지가 그렇게 가셨는데..."
"평소 집에서는 그런 말씀들 많이 하셨어요. 우리것이 우리 몸에 좋다. 어떤 음식은 방부제를 넣은 것이니 먹지말아라. 가족들도 그렇고 어릴적부터 바나나를 안먹어요. 물론 지금도 그렇구요...
모르겠어요. 지금 세상 돌아가는 걸 보면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지 입장이라면 지금 많이 답답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고운씨 역시 정부에 대한 불신은 강했다. "작년에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 몇달간은 정부도 농업정책을 얘기하고 선거 앞둔 국회의원들도 갖은 공약들을 잔뜩 쏟아 냈었는데 일년이 지난 지금 보세요. 쌀개방문제가 터지고 밀려 들어오는 수입농산물들에... 어이가 없죠"
"주위에 우리 농산물을 찾는 사람들은 많아요. 그런데 우리 것을 찾은 걸 이용해서 나쁜 짓하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수입농산물을 마치 우리 것인냥 둔갑시키는... 정부가 그런 행위를 규제를 하면 농민들도 그렇고 나라도 그렇고 성과도 있을 텐데 그런것 조차 하지 않고 있는거죠"
고운씨는 '신토불이(身土不二)'를 얘기했다. "언론들도 나서서 국민들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신토불이'라는 것을 끄집어 낼 수 있지 않을까요? 일본은 국민들이 자국 농산물을 고집하니까 수입을 하고 싶어도 팔리지 않으니 많은량을 수입하지 못하잖아요.
△이고운씨와 아들 현수 ⓒ민중의소리 김철수
우리것이 최고잖아요. 고집스럽게 우리것을 찾자는 거에요. 국민들에게 그런 걸 바라고 싶어요.
우리나라도 그렇게만 된다면 개방을 막네 못막네 하며 고민할 필요는 없는거죠. 국민들이 알아서 그렇게 해 준다면 얼마나 좋아요. 왜 농민들만 그렇게 싸워야 하나요?"
고운씨는 아버지에 대해 오히려 해외에서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것이 비단 이경해 개인에 대한 관심은 아니었을 것이다.
최근에는 프랑스의 한 방송사에서 인터뷰 요청을 해 왔다. 농업문제에 대한 다큐멘터리라고 한다. 오히려 국내 언론들보다 해외 언론들이 더 적극적인 면이 있다. 작년 가을, 한국언론이 여의도 농민들의 격렬시위를 보도하기에 바쁠 때 영국의 BBC방송은 이경해 열사의 고향인 장수를 직접 찾아 쓰러져 가는 한국농업의 현실을 카메라에 담기도 했다.
비아캄페시아 등 멕시코 칸쿤에서 함께 했던 해외단체 대표단이 이번주에 한국을 방문한다. 고운씨는 이들의 방문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 아버지의 고향이기도 한 대한민국의 홀대에 섭섭한 마음도 많은 것이다.
"아버지 일을 계기로 정부가 농업에 힘을 실을 방법을 만들 수도 있었을텐데 어떤 대안도 만들지 못하는 모습이 답답해요"
"농민들이 뭉쳐 큰일을 내야하지 않겠어요?"
일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딸은 아직 감회 보다는 농민단체들, 정부에 하고픈 말이 많은 모양이었다. "해마다 이날을 이경해 열사 이경해 열사 하면서 기념할텐데 정부도 그렇고 기념하고 추모하고 끝날거면 하지 말자구요. 제대로 써먹자는 거에요. 알짜배기로... "
"아빠도 그런 의미로 돌아가신 건 아닐텐데 그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자구요. 추모만하고 말게 아니라 화끈하고 쐐기를 박고, 구멍을 내는 게 힘든 거지 한번 뚫고 나면 터뜨리는 건 어렵지 않잖아요. 유족들은 상관없어요. 아버지도 그걸 원하실 거에요"
한농연이나 전농이나 모두 농민단체지만 생각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잖아요. 전 그런게 중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버지가 늘 강조하셨던 말씀이 초심이에요. 처음 약속했던 마음을 변치말자. 지금 이런 모습은 국회와 다를 게 없어요. 초심을 잃지말고 농민들과의 약속 지켜야죠."
△이경해 열사의 둘째딸 이고운씨 ⓒ민중의소리 김철수
"농민들도 믿고 가는데 같이 갈때는 같이 가는 모습을 바라고 싶어요. 400만 농민이 한 목소리를 내면 뭐가 무섭겠어요. 전경들이 제일 무서워 하는 게 농민들이잖아요. 전경들은 농민들 몇만명이 데모하는 것도 무섭다고 하는데 400만 농민들이 모여서 데모해 봐요. 정말 큰일이 나죠. 그렇게 큰일을 내야하지 않겠어요. 그래야 뭔가 바뀌죠"
"왜 찢어져서 싸워야해요. 할 때 하고 모일 때 모이면 되지..."
그러나 아버지의 추모제가 열리는 이번주, 막내 동생 지혜는 서울에서 열리는 국민대회에 가기로 했고 고운씨와 다른 식구들은 추모대회가 열리는 장수로 내려간다.
농민들에게는 신념과 고집이 있다
"평소에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씀보다는 사람답게 살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어요. '농민은 아버지다', '농업이 죽으면 나라가 죽는다' 어떤 말씀을 하시다가도 항상 그런 말씀을 끝에 하셨어요. '사람다운 삶을 살아라', '인간다운 인간이 되라', '남을 위해 자신을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정치인들도 쌀 밥을 먹을텐데 쌀이 없어지고 평야가 사라진다는 걸 알면서도 그런건지 권력과 부를 다 가져서 그런건지... 쌀이 안나면 뭘 먹고 살아요? 망하는거죠. 이렇게 가다가는 농민들은 또 다시 여의도에서 피흘리며 싸울거고 그렇게 악순환만 되다가 결국 벼 한톨 나지 않는 그런 나라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에요.
농사짓는 분들은 자신의 신념이 있어요. 고집이 있고 그래서 논밭을 떠나지 못하는 거구요. 국민들도 그런 마음을 알고 우리 쌀을 고집한다면 농민들에게도 큰 힘이 되죠. 희망도 찾을 수 있는거고..."
김도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