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 맘때만 되면, 섬진강 매화축제를 방송으로, 또 신문으로만 봤습니다. <토지>의 배경지 평사리문학관에 대한 얘기도 전해듣기만 했습니다. 언젠가는 가겠지만, 아껴두었다고 할까요? 지리산을 거쳐 도착한 하동. 만개한 벚꽃은 그야말로 지상의 천국이었습니다. 섬진강의 드넓은 모래밭을 거닐면서 느끼는 고향의 정취는 또 어떻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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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하동-섬진강 문학기행’이라는 이번 여행에 걸맞게 평사리 문학관은 단순한 드라마 촬영지와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맥락이 결여된 촬영지와 작품속 배경을 무대로 한 문학관과는 느낌과 감동이 천양지차랄까요. 툇마루에서 내려다 보이는 두 그루의 소나무는 화룡점정의 마지막 점이 아닐까 싶을 만큼 인상적이었습니다. 서희가 거처한 별채의 연못은 여행자의 가슴에 잔잔한 파문을 던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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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거대한 벽화, <토지>. 21권에 달하는 대장정을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는 문학 독자들에게는 꼭 평사리문학관을 한번 다녀오기를 추천합니다. 원작에 바로 접근하기 어려운 분들에게는 만화 <토지>도 있습니다. 오세영 작가의 그림은 원작을 고스란히 옮겨놓았습니다. 현재 7권으로 1차분이 나왔는데, 토지에 입문하려는 분들에게 강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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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은 무엇보다 군청 홍보계장님의 문화해설로 빛을 발했습니다. 사진만 서둘러 찍고 여행지를 음미하는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 여행의 특별함은 바로 지역을 잘 아시는 분의 친절한 안내 덕분이었습니다. 지나치기 쉬운 풍경들에 의미를 부여해 주고, 그 가치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뒤채에 별도의 부엌과 채마밭은 왜 있는지 맥락을 짚어주셨고, 함께 한 여행객들의 들뜬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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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지나치는 관광에 그치지 않고, 삶을 되돌아보고 문화의 가치를 느끼게 해준 것은 함께 한 여행자들 때문이기도 했지만, 잘 조성된 여행지, 거기다 지역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그것을 나누고 싶어한 안내자의 마음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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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또 빠뜨릴 수 없는 게 있다면, 바로 ‘맛집’입니다. 경상도 산골에서 자랐던 저로서는 타지(서울) 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맛집에 열광하는지 몰랐을지도 모릅니다. 의레 식사는 한 끼를 때우는 걸로 살아왔던 저에게 전라도의 맛집은 단순한 먹거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고장의 자연을 담은 인심과 정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하동여행은 ‘경상도 음식은 라면도 맛없다’는 농담을 정말 무색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아마 때묻지 않은 인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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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이런 날씨였으면 싶은 춥지도 덥지도 않은 이번 여행. 기가 막히게 잡은 일정에 더해 첫 하동여행에서 이렇게 많은 걸 느끼고 온 건 오롯이 그대로의 모습을 잘 간직하면서도 여행자들을 편안하게 맞아주는 하동의 자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사람들을 따뜻하게 감싸안아주는 섬진강의 물줄기와, 지리산의 넉넉한 품은 도시의 경쟁과 일상에 지친 여행자들을 위로했습니다. 삶에 지치고, 상처받은 사람들, 삶의 버거움에 지친 많은 사람들이 하동의 자연과 경치, 그리고 따뜻한 인심과 물산을 얻어갔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