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부터 남도기행을 다녀왔습니다. 서울-변산반도-진도-해남-강진-순천-여수-광양-하동-순창 코스였습니다. 이순신의 구국정신을 되돌아보자는 목표가 첫째 였습니다. 그러나 쉽지 않게 잡은 여행이라 한 가지 목적만으로는 아깝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문학기행을 병행하기로 했습니다. 강진과 해남에선 다산 정약용 선생님과 고산 윤선도 선생님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잠시 그분들의 영혼 속으로 들어가 보기도 했습니다. 순창에선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생가도 찾아 보았고요.
지난 20일(목) 오전 토지문학관을 찾았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날이었어요. 여수에서 이순신대교를 지나 광양을 거쳐 하동에 이르는 길은 남국의 정취가 무엇인지 그대로 보여주더군요. 영남과 호남이 그렇게 가까운 이웃이구나 하는 것도 알 수 있었고요.
평사리 들판을 내려다 보며 토지문학관과 최참판댁 일대를 둘러보고, 주련에 눈이 갔습니다. 스파트 폰으로 검색을 했더니 조선 성종 때 유호인의 악양동천이더군요. 저의 성격 탓인지 주마간산으로 스쳐가긴 아까워 8행의 시를 낑낑대며 음미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평범한 저가 시의 의미를 정확히 알 수가 있었겠습니까?
지적 호기심만 충일 했지 이를 채워주지 못한 저의 미천한 지식을 자학하고 있는데, 갓을 쓰신 할아버지(사실 저의 형님 뻘 정도)가 나오셔서 시의 깊은 의미를 해설해주시더군요. 그것도 저와 동료 두 사람 등, 세 사람을 위해 20여분을 성심성의 껏, 저의 수준 낮은 질문에 자상게 답변까지 해주시면서... 아름다운 고장 하동 악양면을 그린 조선시대의 시를 두고 있는 하동 분들은 참으로 행복하겠다는 생각도 했지요.
참판님의 설명을 다 듣고 돌아오려는 채비를 하던 중, 정상욱 참판님께서 하동녹차 를 한 잔 대접하시겠다면서 당신의 방으로 안내해주셨습니다. 책상 위엔 논어 책이 펼쳐져 있더군요. 저도 정년퇴임 후에 한국문단을 빛냈던 분들의 고장이나 배경이되었던 지역에서 공부를 하고싶다는 소박한 꿈을 이야기했더니, 당신이 공부하고 계시는 한시도 소개해주시고, 한문 공부를 추천하시더군요.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재능 기부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구나! 내가 다른 사람보다 조금 낳은 장점이 있으면, 그것을 살려 타인이 고마워할 수 있는 무엇을 주는 것, 바로 그것이 아니겠는가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녹차는 전남 보성인줄 만 알았어요. 참판님이 주시는 하동 녹차의 맛은 진하게 저의 몸에 배였습니다. 아마 그 향은 오래오래 갈 것입니다. 이런 덕망 있는 분들을 모셔 최참판댁을 찾는 방문객들을 마음을 사로잡는 하동군의 배려에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최참판댁 입구 박경리 선생님의 사진과 함께 쓰여진 글, 사고하는 것은 능동성의 근원이며, 창조의 원천이다를 다시 새겨봅니다. 지금 우리사회에 가장 필요하다는 창조와 능동성! 역설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부족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중앙정부의 많은 공직자들이 지방의 변하는 모습을 보고 느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岳陽無處不淸幽(악양무처불청유, 악양-하동-의 모든 곳이 맑고 깊구나!)를 되새기며 감사의 글을 맺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상욱 명혜참판님
한국언론진흥재단 최광범 국장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