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봄마중가다
1박2일로 하동엘 다녀왔습니다.
거기에 고등학교 동기녀석이 살고 있습니다. 하동읍내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친군데
한 번 씩 전국의 칭구(그이의 표현입니다)들을 불러 모아 걸진 놀이판을 벌입니다.
올해로 세번째인데 그리 출석률이 높지 않은 동기들 모임에 그것도 1박2일짜리를
개근했다는 거 아닙니까. 그대로 말하자면 올해는 마음이 바빠 빠질까도 했는데
이거 은근히 중독성이 있습니다.
하동이 어딥니까. 지리산과 섬진강을 끼고 있는 그 이름만으로도 푸근하고 아늑한,
뭐라도 들어줄 것같은 그런 곳이지요. 특히나 올해는 처음으로 봄에 섬진강을
정면으로 툭 터놓은 데로 숙소를 정하였는데 이전에 유홍준 선생식대로 이를 빌려
말하면 하동은 이 땅의 ‘봄소식 1번지’라 부르기에 전혀 모자람이 없겠지요.
그런데 이 행사를 올 때면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있습니다. 차를 타고 나 혼자 옵니다.
이번에는 부산동기들이 버스를 대절하기도 하였는데 ‘노 쌩큐’, 나만의 시간, 나만의
드라이브를 즐기는 것이지요. 지난 행사 때도 그렇게 썼지만 정해진 숙소가 있고
반가운 얼굴과 푸짐한 먹을거리를 두고 사전에 이리저리 딴전을 피우는 일, 그 맛도
즐길만 하거든요.
주말임에도 괜찮은 도로사정에 휴게소에 구한 7080 테이프를 볼륨껏 틀어놓고
도로가의 봄을 즐기며 섬진강을 향했겠지요. (어떤 이들은 드라이브를 여행의
하급으로 치지만 상관 있겠나요) 역부러 하동읍에서 광양 매실마을 쪽으로 틀어서
가다서다 해가며 말 그대로 ‘섬진강의 봄’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의 봄같지 않은 봄을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봄햇살과 어우러진 강변의 풍광은
온천지 켜켜이 봄기운이 가득하였습니다. 매화도 지고 벚꽃도 지고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 배꽃이었는데 튼실한 하체와 단단한 줄기를 타고 특유의 하얀색이
발하는, 다발로 핀 배꽃의 정취를 새롭게 발견하였네요. (그러고 보면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하는 시도 떠오르는데 달밤에 바라보는 배꽃이 궁금해집니다)
그리 어슬렁거리다가 해질 무렵 찾아들어간 숙소 앞쪽에 맨 먼저 반기는 것이
하동을 찾아온 칭구들을 환영한다는 ‘주관 김성봉’의 펼침막이었습니다. 그대로
말하자면 형식적인 구호식의 펼침막 평소에 별로인데 이 친구 글은 벌써 3회째로
눈에 익어서인지 정이 갑니다.
너른 마당을 빌어 빵빵한 음향에 중년의 단골메뉴인 노래방과 비빔 술(소주와 맥주를
섞는 일을 비빈다고 하는데 이것도 잘 비벼야 한답니다) 금방 잡은 돼지수육과
재첩숙회, 봄철별미라고 하는 은개나무 새순(남자에게 좋다는 말을 수도 없이 하네요)
등으로 푸짐한 저녁을 챙겨 먹었네요.
그러면서 빠지지 않는 것이 구창이의 축시, 어찌보면 술기운에 건성으로 듣고
넘어가는 순서일 것 같은데 이 친구 글빨도 수준급이지만 그 정성이 참말 대단합니다.
논평을 맡은 한박사 말대로 그이의 시심이 타오르는 뜨거운 가슴에 경의를 표할밖에요.
(구창아, 됐나)
이어지는 술자리, 숯불에 구운 돼지고기를 안주삼아 이제 반백과 반까(반쯤 까진)의
머리스타일이 더 익숙한 고등학교 칭구들의 반 이상이 경상도 욕인 대화로 봄밤이
익어갔네요. 그렇게 밤새 숙소 안팎으로 술판과 노래방이 이어졌는데 옴매 기죽는 일이
있었으니, 마당에 마련된 특설무대에서 준섭이가 싸한 밤공기에도 불구하고
웃통을 벗고 노래를 부르는 거 아닌가. 저것이 얼핏 보기에도 익숙한 몸놀림에 빵빵한
근육질 몸매를 뽐내고 있는데 그래 1년만 지둘리라, 내도 쪼꼬렛 복근인가 만들어 오마
해야겠지만, 내 꼬라지를 잘 아는터라, 후후. 그런데 더욱 감동스러운 것은 준섭이와
천홍이 주방에 들어가서 밤늦게까지 직접 재첩숙회에 비빔밥까지 만들어 칭구들을
먹였다는 거, 강온을 겸비한 준섭이에게 어찌 뭇 여인들이 넘어가지 않을꼬.
다음날 새벽 일찍 눈이 떠져 하동읍에 들어가 샤워를 하고 들어와 담백하고 개운한
하동 재첩국으로 해장 겸 아침을 먹고 주관 김성봉의 인솔로 뒷산 산책을 하였네요.
산속에서 예상 밖의 복병을 만나 저만치 섬진강을 굽어보면서 한 보시기 큰일을 보고
혼자 절집도 들르고 고즈넉한 산길을 걷다 내려오니 일찌감치 숯불판 옆으로 술자리가
벌어졌네요. 오늘 아침의 술자리 주제는 ‘욕의 향연’, 지위와 학력과 말빨을 떠나서
걸지고 원색적인 그 동안 눌러왔던 ‘욕고픔’을 맘껏 발산하는 자리가 되었네요.
이어지는 만원빵 족구시합, 기꺼이 출전하려 했으나 내 돈 꼬는 건 아깝지 않으나
돈꼴고 구멍이라고 욕먹고 할 자신이 서질 않아.
거기까지 오후 일정이 있어 먼저 나오려는데 하동칭구 빼먹지 않고 선물까지 챙겨
주는데 아, 유기농 토마토에 기념타월까지. 혹 선물에 눈이 멀어 매번 개근한 건
아닐까, 그래도 이제는 안주면 섭섭할 것 같아. (봉아, 잘해주믄 이래된다)
휴일 점심 무렵 아직 차가 몰리기 전 고속도로를 타고 집으로 고고씽.
덧말,
마침 친구의 배웅을 받으며 숙소를 나서는데 '김성봉의 여인' 한 명이 하는 말,
‘점심 안드시고 가면 후회할 터인데’ 오는 내내 귀에 아른거렸다는.
여기서 김성봉의 여인에 대한 논평, 이 친구 그 많은 친구 불러 먹이면서 이른바
만들어진 음식 시킨다든지 하지 않는다. 즉석에서 밥이며 국이며 안주며 만들어서
따끈하게 대접하는데 거기에 쌍계보살을 위시한 ‘김성봉의 여인들’이 등장한다.
하동 살면서 형님 아우하며 지내며 하동을 주름잡는 이른바 패밀리다. 그러니
지역유지의 마나님들한테 대접받은 우리 칭구들 ‘복인 줄 알아, 이것들아’
다시 한번 봉아, ‘참말로 애많이 썼데이 고맙데이’
원문보기[동성이오회 까페 http://cafe.daum.net/psds25/5V2y/18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