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어울리지도 못하고 말걸기가 어려워요. 친구들이 절 싫어하는 것
같아요.’(중2 여학생)
‘친구를 어떻게 사귀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제 맘 속을 좀더 잘 표현해서
친구들과 잘 지내고 싶어요.’ (중3 남학생)
‘친구가 없다’고 호소하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올 상반기 동안 한국청소년상담원 사이버상담센터에 친구와의 문제로 고민을 털어놓은 학생은 모두 1779명. 접수된 총 5790건의 사연 중 30%를 차지하는 숫자다. 사춘기 시절 친구에 대한 고민은 당연한 게 아니냐고 넘어가기에는 요즘 아이들의 양상이 독특하다.
지난달 17일 한국청소년상담원에서 열린 청소년 상담사례 발표회에 참석한 이화여고 한소연 교사는 요즘 청소년의 친구 관계의 특징을 몇가지로 정리했다.
첫째는 이중성. 모르는 친구끼리 처음 인사를 트고 이야기를 주고받는데는
스스럼없으면서도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친구는 없다는 것. 스스로를
가식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겉으만 무난한 친구관계를 유지하는 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둘째는 ‘돈이 없으면 친구도 없다’는 것. 요즘 아이들은 친구 생일에 향수
같은고가의 선물을 안기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친구 사이의 가장 중요한
고리는 기념일을 챙기는 것이고, 마음 가는 데는 물질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셋째는 ‘스따(스스로 따)’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책이나 애완동물,인형을 친구 삼아 지내고 게임중독이나 인터넷 채팅에
빠져있어 친구가 없어도 혼자서 즐겁게 지낸다고 말하는 아이들이다.
심지어 부모 중에도 ‘친구가 없으니 학습에 집중할 수 있다’며 좋아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관계맺기에 서투른 아이는 공격적이거나 독선적인 아이로 자라
성인이 된 후에도 문제행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커진다는 위험이 있다.
요즘 아이들이 친구를 사귀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은 기질상의 문제라기보다는 환경 탓이 크다. 부모세대는 여러 형제와 복닥거리고 골목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면서 자연스럽게 대인관계 기술을 익힐 수 있었지만 외동으로 왕자와 공주처럼 떠받들려 자란 요즘 청소년들은 남과 감정을 주고받고 배려하는 관계를 경험하기가 쉽지 않다.
그럴수록 전문가들은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병석 단국대 특수교육과 교수는 “부모와의 관계에 어려움을 겪으면 아이는 성장해서도 친구관계에서 좌절을 겪을 수 있다”고 부모의 영향을 강조했다.
12세가 될 때까지는 부모가 아이들의 관계욕구를 대부분 충족시켜줘야 하는데, 함께 있지 못했거나 부모가 자녀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못하면 관계욕구가 적절하게 채워지지 못해 원만한 대인관계를 형성하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이혜성 한국청소년상담원장은 “친구가 없는 아이들의 특징 중 하나가 자존감이 부족하다는 것”이라며 “부모가 자녀를 대하는 태도부터 바꿔야한다”고 지적했다.
성적이 오르면 과장해서 칭찬하다가도 좀 부족하다 느끼면 돌변해 꾸중하고 무시함으로써 아이가 자신을 비하하는 자아상을 갖도록 만들지는 않는지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부모가 친구마저 경쟁관계로 몰아 부치는 것도 아이들이 또래와 어울리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아이가 친구에게 열등감을 갖고 저자세로 대하게 되면 진실한 친구를 사귀기 어렵게 마련이다.
이호준 상담원 선임상담원은 “친구가 없는 학생들은 친구를 사귀는 구체적인 기술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럴 경우 부모가 직접 나서서 친구 사귀는 법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 우선 성격이나 관심사가 같은 친구를 후보로 삼아 물건을 빌려 달라든지,집에 새로운 게임이 있다거나 공부를 같이 하자고 제안하는 식으로 친구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알려주어야 한다. 이때 친구의 반응에 따라 어떻게 응대해야 하는지 상황별 연습도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거절당하거나 반응이 좋지 않아도 실망하지 말라고 격려를 잊지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부모가 아이의 친구문제에 대해 지나친 걱정을 보이고 섣불리 코치를 하려들면 아이가 큰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